[뚜벅이 여행기28]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투어 후기 – 일본영사관 동양척식 적산가옥

들어가면서

유달산 정상을 찍고 게스트하우스에 와서 좀 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계속된 뚜벅이 여행으로 발이 많이 아팠는데 등산까지 하고나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에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목포 여행을 그만둘 수 없었다.

나는 목포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투어를 하기로 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내가 묵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약 10분 간 걸어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도착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897년 목포가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하면서 외국인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설치한 각국 거류지 지역이었다.

지금도 당시의 바둑판식 도로 구조와 근대 건축물이 원형대로 잘 남아 있다. 그 중 핵심이 되는 지역을 등록문화재 718호로 등록하였다고 한다.

이 등록문화재 지역에는 구 일본 영사관을 비롯하여, 구 동양 척식 회사, 일본인들이 이용했던 교회, 학교, 민가, 백화점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사진=카카오맵
사진=목포시청 홈페이지

흔히 말하는 목포 원도심지 지역의 일부를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설정하여 등록문화재로 등록한 것이다.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주요 문화재들의 위치를 지도와 함께 나타낸 알림판이 있었다.

나는 먼저 구 목포 일본영사관부터 가보기로 했다.

구 일본영사관

구 일본 영사관은 약간 높은 지대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보이는 붉은 별돌 건물이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구 목포 일본영사관은 목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1900년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해방 이후에는 목포시청, 목포 시립 도서관 등으로 사용해오다가 현재는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 일본영사관 건물을 자세히 보니 마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제가 서울에 지었다가 6.25 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 당한 경성우체국 건물이 생각나기도 했다.

현재는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개관하면서 목포의 근대역사의 모든 것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입장료는 어른의 경우 2,000원이었다.

창문을 자세히 보니 익숙한 모양이 있었다. 바로 욱일기였다. 붉은 벽돌과 흰 벽돌을 이용해 욱일기를 건물에 박았다.

건물 자체로만 보면 깔끔하고 예뻤지만 욱일기를 보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주위에 나무와 어울어져 많은 관광객들이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목포부청 서고 및 방공호

일본영사관 뒤에는 서고 등으로 사용된 건물이 있었다. 이 서고는 구 일본영사관이 1910년에 목포부청으로 사용되면서 1932년에 신축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일본공사관과 달리 화강암 등을 재료로 한 석조 건물이었다.

지붕 부분이 그리스 신전을 떠올리게 했다.

서고 옆에는 폭격 시 일본인 직원들의 피난을 위해 지어진 방공호가 있었다.

방공호 입구는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될 만큼 낮았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 당시 연합군의 폭격에 대비해 이러한 방공호를 만들어 취사 시설 및 공기 정화 시설까지 마련해 장기전에 대비했다고 한다.

목포에는 이 유달산 방공호말고도 고하도에도 방공호가 있다고 한다.

이 유달산 방공호의 길이는 85미터 정도된다고 한다. 당시 이곳에 주둔하던 일본군 150사단의 사령부가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 일제는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하여 방공호를 짓게했다고 한다. 이를 재현한 모습이 모형으로 있었다.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다음으로 찾은 곳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는 일본이 조선과 대만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고 경제권 이득 착취를 위해 1908년에 설립한 특수국책회사다.

동척의 목포지점은 나주시 영산포에 설립한 것을 1920년 6월 1일 목포로 옮긴 후에1921년 11월 7일 위와 같은 건물을 설립하면서 본격 운영하였다.

해방 후에는 해군 목포경비부로 사용되었다가 목포해역사 헌병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다 한동안 빈 건물로 방치된 것을 현재와 같은 목포근대역사관 2관으로 개관하였다.

내부에는 일제 당시 목포를 담은 사진과 독립 운동을 하던 독립운동가에 대한 것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건물은 석조건물로서 르네상스식 건축풍으로 지어졌다.

내가 갔을 때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겸 마당극이 진행되고 있었다.

동척 목포지점 뒤쪽에는 석조와 붉은벽돌이 혼합된 부속건물이 딸려 있었다.

구 목포공립심상소학교 강당

세 번째로 찾은 곳은 구 목포공립심상소학교 강당이었다.

현재는 목포유달초등학교 부지 내에 부속 건물로 있었다.

건물의 외관이 좀 특별했는데 두 가지 색상의 타일로 마감을 했다고 한다. 사진에도 보이듯 진한 고동색과 옅은 황토색 타일로 마감을 했다. 하단부에는 석재를 이용해 건축미를 더했다.

건물 자체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라고 한다.

구 목포공립심상소학교 강당은 목포 개항 이후에 이주해 온 일본인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세워진 목포 공립 심상소학교의 강당이었다.

1929년에 건립되었으며 1층은 교실, 2층은 강당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내가 갔을 당시에는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일제 잔재 국기게양대가 있었다. 일제 때 만들어진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로 명명되고 있었다.

나중에 스테인레스 깃대로 교체하고 보수를 하여 국기게양대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일제강점기의 역사 교육을 위해 그대로 보존한다고 한다.

목포진지

다음으로 찾은 곳은 목포진지라는 곳이었다.

목포진지로 가려면 위 사진처럼 언덕을 올라야 했다. 입구에는 ‘목포진 역사공원’이라는 푯말이 있었다.

목포진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이며 목포영·목포대라고 불렀고 만호(萬戶)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만호영·만호진·만호청이라 부르기도 했다.

목포는 지리상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있고, 바다로 연결되는 지리적인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남과 경상남부지역으로 통하는 세곡 운반로로 사용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 세종 때 주변의 바닷길을 지키기 위해 목포진이란 수군 기지를 설치했다.

언덕 위에 있던 목포진이 성의 모습이 갖추어 진 것은 연산군 때로 전해진다.  언덕 주위로 높은 성벽을 쌓았다고 한다.

근대 들어서 훼손되어 목포진 유적비만이 남아있던 곳을 2014년 현재의 모습으로 일부 복원하였다고 한다.

목포진지가 있는 곳에서 원도심을 내려다 보았다. 마침 해가 지는 때라 노을빛이 구름 사이로 비추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다음으로 찾은 곳은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이다.

호남은행은 민족 자본 육성을 위해 현준호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아 1920년에 설립한 은행이다. 일제의 식민지 금융 정책에 맞서 독자적으로 운영을 하다가 1942년에 동일은행과 강제로 통합되었고 이후 조흥은행으로 명맥이 이어졌다.

이 건물은 1929년 11월 11일에 신축한 것이다. 2층으로 된 사각형 모양의 벽돌 건물로 표면에 붉은색 타일을 붙여 멋스러움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내가 찾았을 때는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 기존 건물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천막으로 인쇄하여 공사장 겉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진= 국가문화유산포털위 사진이 보수 공사 전 건물의 모습이다.

구 목포화신연쇄점

다음으로 찾은 곳은 구 목포 화신 연쇄점이었다. 영화 <장군의 아들>이나 드라마 <야인시대>를 보면서 종로에 ‘화신백화점’이란 곳이 나오는데 목포에도 같은 이름의 백화점이 있었다.

교차로에 위치한 이 건물은 모서리 부분이 직각이 아닌 곡선 형태로 된 것이 특징이다.

원래는 일본인이 1932년에 지어서 총포 화약, 서양식 가구 등을 수입해서 팔다가 조선인 서병재가 소유권을 인수하여 목포 화신 연쇄점으로 운영하였다고 한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백화점이라고 하기엔 크기가 작지만 당시에는 목포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종합 상점이었다.

옥상인 3층에는 식당과 양복 판매점까지 있었다고 한다.

구 동보원사 목포별원

위 건물은 1930년대에 일본 사찰인 동본원사 목포별원 법당으로 지은 것이다.

원래는 1905년 11월경에 목조 단층 사원으로 세워진 건물을 1930년대에 석재를 이용하여 위와 같은 건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지붕 형태가 특이한데 이러한 지붕을 ‘박공 지붕’이라고 한다. 일본 신사를 떠올리게 한다.

나중에는 목포 중앙 교회로 사용되었다.

5.18 민주화 운동과 6.10 민주 항쟁 당시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기타

위 건물은 목포 번화로 일본식 상가주택-1로 명명되었다.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 인근에 위치해 있다. 건립 당시에는 일본 전통신인 게다(下駄)를 판매하는 점포이었고 2층은 주거용 주택을 형성한 일본식 도시점포주택 형식인 마찌야(町家) 형식의 주상복합형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사슴수퍼마켙’이라는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위 건물은 목포 영산로 일본식 가옥으로 명명되었다.

개항 후에 일본인 자녀가 다녔던 소학교(현재 유달 초등학교) 앞에 위치하고 있다.

1층과 2층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고 집 위에 또 집이 올려 지은 상층 돌출형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위 건물은 목포 번화로 일본식 가옥으로 명명되었다. 이 역시 개항 후에 일본인 자녀가 다니던 소학교 인근에 위치해 있다.

위 건물은 목포 번화로 일본식 가옥-2로 명명되었다.

지상 1층 구조로 출입구 현관 상부 장식이 전형적인 일본 민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위 건물은 구 목포 부립 병원 관사다.

구 동양척식회사와 대각선 방향으로 있는 일본식 고급 주택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맞은편에 있던 목포 부립 병원의 관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위 건물은 구 목포 일본 기독 교회다. 1922년에 지어졌고 1927년에 증축됐다. 원래는 2층 구조였는데 현재는 1층만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다니던 교회다. 전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교회 건물이라고 한다.

위 건물은 목포 부두 근대 상가 주택으로 명명되었다. 일제강점기가 아닌 해방 후 1949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 전면부가 직각 형태가 아닌 3면으로 지어져 물건을 진열하고 옮기기 편하게 되어 있다.

옛 부두와 가까워서 어선에 필요한 용품을 판매하는 상가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중 하나다.

위 건물은 목포 해안로 일본식 상가 주택으로 명명되었다.

1935년에 지어진 것으로 등록되어 있다.

1층은 상가로 사용되었고 2층은 주택으로 활용하는 일본식 점포 주택인 ‘마치야’ 형식이다.

위 건물은 목포 해안로 교차로 상가 주택로 명명되었다.

국가문화유산포털에 따르면,

근대기 목포의 대표적 번화가이자 중심지였던 구 목포경찰서 앞 교차로에 면해 건축된 가장 상징적 상가 건물로 교차로에 면한 부정형의 다각형 대지에서 대지 형태에 맞춰 부정형의 다각형 평면과 독특한 외관을 구성하였으며, 특히 교차로 모서리에 면한 수직적 벽체를 아치형 창문과 옥탑 장식을 강조한 일본 마치야(町家) 형식으로 2층 규모의 목조상가주택이다. 주거 기능을 형성한 상업거리의 흔적, 역사성, 장소성을 보여주는 보존상태가 양호한 상가건물이다.

라고 나와 있다.

내가 갔을 때는 보수 공사 중이라 천막을 쳐서 건물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위 건물은 목포 번화로 일본식 상가 주택-2로 명명되었다.

그 옆에는 화강암으로 지어진 건물이 있었는데 설명이 따로 없는 것을 보니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것 같다.

위 건물은 목포 번화로 일본식 상가 건물-3으로 명명되었다.

마치야 형식으로 1층은 상가, 2층은 주택으로 이용된 일본식 주상 복합 건물이다.

이 근처에는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이 건물은 외벽을 목재로 마감하고 긴 창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건물은 현대에 지은 것인지 아니면 예전 목재 건물을 리모델링 한 것인지 모르겠다. 목재로 마감한 것이 이색적이었다.

목포 원도심에는 국도 1호선, 국도 2호선 기점 기념비가 있었다. 국도 1호선의 경우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일제가 당시 조선에서 길을 내면서 목포를 기점으로 하였다. 도로원표 역시 이곳에 있다.

하지만 나중에 국도 1, 2호선의 기점이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구 일본공사관 앞에는 위와 같이 평화의 소녀상이 있었다.

국화 한 송이와 함께 코로나 예방을 위해 소녀상에는 마스크가 씌어져 있었다.

맨발로 있는 소녀를 보니 마음이 울컥해졌다. 구 일본공사관 앞에 있어서 그런지 더욱 상징성이 느껴졌다.

이곳을 돌아다니던 중 흑산도 혹어로 유명한 덕인집이 있었다. 한 번 들어가서 홍어회 도전을 해보고 싶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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