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여행기49] 제주 관덕정 + 제주목 관아 – 600년 제주 역사의 산 증인

들어가면서

제주 미소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내려놓고 좀 쉰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섰다. 제주에서의 하루 하루가 소중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돌아다녀야 했다.

나는 일단 용두암을 목표로 걷기 시작했다. 믿을 건 다리밖에 없었으므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고생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걸으면서 제주 시내와 여러 풍경을 보기 위해 결정한 것이다. 거리도 얼마 되지 않았다.

관덕정

사진=카카오맵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서쪽으로 조금 걷는데 규모가 큰 전통 건물이 나왔다. 관덕정이란 건물이었다. 위치는 제주 시내에 있었다. 제주 동문시장에서 왼쪽으로 가다보면 나온다.

위에 보이는 건물이 관덕정이다. 관덕정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누정이다.

조선 세종 때 제주목사 신숙청이 군사 훈련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관덕정(觀德亭)에서 관덕(觀德)은 유교 경전 《예기》 사의 편에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쌓는 것이다)의 대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 규모가 상당한데 경남 진주 진주성에 있는 촉석루를 연상케할 정도로 컸다.

관덕정의 특징이 양 옆으로 길게 뻗은 처마라고 하는데 그 처마 때문에 크기가 더욱 웅장해보였다.

이렇게 큰 건물이었던 경덕정은 일제강점기 때 도로 건설을 위해 왼쪽 처마 일부분을 잘라내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보수를 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이재수의 난과, 3.1절 발포사건의 중심에 이 관덕정이 있었다고 한다.

1448년에 세워졌으니 햇수로만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제주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옆에는 장군의 지휘관기인 수자기가 걸려 있었다.

제주목 관아

또한 관덕정 옆에는 제주목 관아가 자리잡고 있었다. 입구에 2층으로된 누각이 인상적이었다.

제주목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목에 파견된 지방관인 목사(牧使)가 업무를 보던 관청 건물이다.

그 전에 탐라국 시절부터 이 일대는 제주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게 오랜 발굴조사로 밝혀졌다고 한다.

제주목 관아 내부는 위와 같이 구성되어 있었다. 원래는 일제강점기 때 모두 헐려 없어졌지만 2002년에 복원공사를 통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입장료는 성인의 경우 1,5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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